(수필) 열등감 그리고 자존심
인송仁松 박정웅(정책통)
기원 전 216년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칼타고의 영웅
한니발 장군 초상화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날 한니발 장군은 초상화가를 불렀다. 그리고 자기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장군은 화가 앞에 앉았다.
조금 후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자신의 초상화를 손에 든 그는 그 자리에서 화가를 죽여 버리고 말았다.
한니발은 외눈박이였다. 화가는 이를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었다.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열등감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었다.
장군은 다른 초상화가를 불렀다. 그는 매우 재치 있는 화가였다. 먼저 다른 화가가 한니발의 외눈을
사실 그대로 그려서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한동안 고민했다.
어떻게 그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꾀를 내었다.
장군의 옆모습만을 그렸다. 눈을 하나만 그려도 문제가 안 되게…. 이윽고 한니발 장군은
초상화를 받아들자 기뻐하면서 그 초상화가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누구나 신이 아니기에 알게 모르게 열등감이 있고, 열등감을 건드리면 아파한다.
살인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아파한다.
열등감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미국 말츠 박사의 말을 빌리면, 98%의 사람들이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평소에 무심코 건네는 말 가운데 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한 말 때문에 원만했던 인간관계가 평생 원수로
변하거나 소원한 관계로 끝나는 일을 수도 없이 목격한다. 친한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쪽 얼굴만
재치 있게 그려 한니발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은 초상화가의 지혜는 두고두고 처세술에 귀감이 된다.
요즘 인터넷에서의 댓글을 보면 그러하다. 천박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열등감과 자존심을 고의로 건드려
화를 돋우는 몰상식, 비도덕이 판을 친다. 정치인의 게시판이나, 연예인의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난무한다.
익명성의 공간이라고 함부로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욕설 등의 저질 표현은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의식을
높이기 위해 국민정신운동으로 반드시 시급히 시정해야 할 사회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의사였던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의식세계가
표출될 때 이드ID라는 원초적 본능, 감정과 에고EGO라는 자아, 이성적 행위와
슈퍼에고SUPER EGO라는 초자아, 도덕심의 세 가지 중 하나로 표출된다고 했다.
이들 세 가지 의식작용이 국가권력의 3권 분립처럼
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견제와 균형감각을 이루어한다. 행여 이드(감정) 쪽으로 치우쳐 표출되면
상대방의 열등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아무리 예전에 상대방이 잘못하여 사사로운
감정이 앙금으로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후일에 격한 감정으로 상대방의 열등감과
자존심을 건드리면, 상대방도 자기 과거 잘못은 덮어두고
적반하장으로 격렬하게 저항하게 되어 인간관계는 파탄을 맞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는 순간 감정을 억누르고 부드러운 에고 또는 슈퍼에고적 표출로 인간관계의 위기를
잘 넘겨야 하리라. 자기 의사를 표현할 때는 보통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되기가 쉬운 만큼 모두가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찍이 유기론唯氣論을 주장한 서경덕 선생, 이기理氣 일원론을 주장한 이율곡 선생의 철학적
사색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존심'은 열등감과 명칭은 다르나 그 실체는 똑 같다.
그걸 건드리면
역시 인간관계의
파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
모든 대인관계에서
두루 적용되는 처세의 기본 원리일 것이다.
1986년도 국민정신교육 세미나에서 어느 저명한 대학교 총장의 경험담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곱 살 되는 총장의 외손녀가 호기심이 강해 자기 엄마의 물건을 가지고 놀다 자주 망가뜨렸다.
몇 차례 엄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외손녀가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와서
외할아버지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인자한 표정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할아버지 안경을 만지면 먼지가 많이 끼겠지. 그러면 안경알이 보이지 않아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다닐 수 없단다. 귀엽고 착한 애야, 네가 할아버지 좀 도와줄 수 없겠니. 잘 부탁한다.”
이렇게 외손자를 부드럽게 달래자
“예, 할아버지, 먼지 안 끼도록 안경 갑에 잘 넣어 둘 게요.”
라고 말하고는 안경 만지기를 중단했다고 한다.
여섯 살 꼬마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아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다가가는 어른들의 지혜가
우리 가정과 사회,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 일이 있었다.
2012년 11월 12일 영국 플리머스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은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어려서 심한 꾸중을 많이 듣거나 매를 많이 맞은 사람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암 발병률이 70% 가량 더 높다는 내용이었다. 천식, 심장질환, 정신 질환 발병률도
이와 비슷하게 높았고, 신체 면역력도 정상인보다 더 약했다. 어려서 아동 학대와 꾸중을 삼가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 연구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열등감이나 자존심을 잘못 건드려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 사회,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되어 우정에 금이 가고, 가정이 파탄된다. 국가 간에는 전쟁발발로 이어지는 등 인류 역사가 변한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했던가. 피그말리온 효과는 모두 자존심을 살려주고
열등감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데서 오는 최고의 심리적 보약처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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